말씀의 나눔

설교자 김지연 목사  [ 마가복음 27:45-50 ] Sep 25, 2015 VIEW 1625

여러분, 십자가사건이 진행되면서 오늘 본문에 드디어 예수님께서 돌아가십니다.
이 죽으실 때까지의 과정을 가만히 살펴보면 참 두드러진 특징이 하나 있어요.
예수님께서 두려워하신다는 겁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이 말, 예수님이 십자가사건을 통해서 마음속에 느끼시는 상실감의 결정입니다.
상실감은 언제나 두려움으로 표현이 됩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잃어버릴까 봐 두려운 것이죠
가장 행복한 순간임에도 두려움이 찾아 올 때가 있는데 그 이유는 지금 이 행복이 상실될 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상실감이 두려움으로 표현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의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며 깊은 상실감의 절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두려움이 이렇게 표현되기는 처음일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두려워해야 될 모든 상황에서 주님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풍랑 만난 배 위에서, 집채만 한 풍랑에 뒤덮일 때 두려워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목숨을 상실할까 봐 두려움이 표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종교적 사회적 모든 실권을 장악하고 심지어는 죽고 살리는 힘까지 가지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이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예수님을 핍박할 때 예수님은 절대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위협 앞에 섰을 때 주님,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사회에서 매장당해 버린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입니까?
우리 인간이 무서워하는 어떤 것 앞에서도 두려움을 표현하지 않으셨던 주님
그 주님께서 지금 상실의 절정에 이르러 두려움을 드러내시고 계신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괴로우셨을 것은 마땅히 우리가 짐작할 수 있지만, 주님이 그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표현하신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오늘 이 상실감 표현의 절정 앞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것이 두려우셨던 것이에요.

성경은 낮12시부터 오후3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동 땅이 적도에 가까워서 이 시간이 가장 태양이 강렬할 때 입니다. 이것은 사단의 세력이 커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버리셨다는 이 마음의 두려움이 뒤덮인 어두움으로 표현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버려지신 상태를 느끼시는 예수님의 마음, 그것을 표현해낸 것이에요.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 가운데 던지 셨습니다. 저주 속으로 버리신 것입니다.
왜죠? 우리의 저주가 대속 되기 위해서는 죄 없는 분이 그 저주를 받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내용을 Fully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는 이미 이 땅에서 살면서 저주의 상태에서 아주 편안하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자연스러운거죠. 하지만 주님은 다르죠…
태초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셨고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항상 하늘의 하나님과 교제하면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을 하나님의 아버지와 교제 하며 그 뜻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풍랑이 두렵죠, 성공, 돈, 승진, 명예, 결혼, 직장, 관계 등이 두렵죠…
하지만 주님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깊은 상실감으로 두려움의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실감과 두려움과 너무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Ex)이 두려워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겨우겨우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둘째 예랑이가 자주 사고를 치곤했어요…
늘 엄마하고 실랑이를 하지요, ‘이래라 저래라, 이러지 말아라 저러지 말아라’
그런데 한번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나서서 아이에게 야단을 치고 타임아웃을 시켰는데 이번에는 뒷문 밖에 세워두고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저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아이가 경기가 날 정도로 날리를 치며 문은 두두리고 발을 동동 구르고 심지어는 시간이 흐리자 땅바닥을 딩굴고 소리를 지름니다. ‘아빠 아빠, 살려주세요!’하고
그 잠긴 문 바깥에서 아이가 경악하며 질러대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아이의 마음속의 두려움이 내게 전달되면서 내가 두려워지는 겁니다, 아이가 어떻게 잘못 될까 봐, 너무너무 두렵고 무서워하니까. 매를 들고 옆에서 때릴 때는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아파서 울었습니다.
그런데 아빠와 격리를 시켜버리니까. 아이가 기절을 할 정도로 발악을 하며 무서워하는데 그 아이의 무서움이 내 마음에 무서움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아이가 잘못 돼서 정신이 이상하게 될 것 같았어요.
 
여러분, 주님께서 이 두려움을 느낀 겁니다. 창세전부터 함께 하셨던 성부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온 인류의 죄를 위해 그 죄값을 담당하시기 위해 아버지와 죽음이라는 경계를 넘어 아버지와 격리되셨어야 했던 예수 그리스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며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옵소서’
절규하며 간절히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과 싸우셨던 예수 그리스도…
주님은 나를 위해 그 절망과 고통과 상실의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 드리워진 대낮의 흑암, 이 저주의 흑암,
우리는 풍랑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나를 향하여 지탄하고 사회에서 매장당할 것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업에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우리가 진짜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예수님이 두려워 하셨던 것 같은 하나님과의 격리, 단절, 멀어짐을 두려워 해야 하는 것입니다.
Disconnect with God… .
가장 큰 슬픔이고 저주이고 심판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닫을 때 비로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공격과 현실
가운데서도 두려움 대신 담대함으로 염려와 걱정대신 찬송과 기도 함으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저희교회 이름이 Connect 교회 입니다. 저는 이 이름이 너무 좋습니다.
하나님과 커넥트 되고 너와 내가 커넥트되어 세상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제자임을 알게 되고 더 나아가 이웃과 세상과 커넥트되는 교회를 기대하고 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모든 커넥트의 근거이며 Source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소통도 우리의 소통도 이웃과 세상과의 소통도 그 안에 항상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커넥트 안에서 생명이 있고, 역사와 능력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주간을 맞이 하며 깊이 주님을 묵상하시면서 나는 무엇을 두려워 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염려하고, 무엇 때문에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가?를 돌이켜 보고 다시 예수그리스도의 상실감의 이유로 돌아와 하나님과의 멀어짐에 눈물흘리며 회계하고 돌아오는 귀한 한주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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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는 길Direction
One block north of Yonge and Bloor subway station and Bay subway stations.
Yonge and Bloor 전철역 또는 Bay 전철역에서 한 블럭 북쪽으로 오시면 Davenport를 만나 45번지를 찾으면 됩니다.

주차 안내Free Underground Parking
Available for almost all events, enter off Scollard Street. Just push the green button on the control panel.
40 Scollard St. 아파트 지하 주차장 입구 판넬의 녹색 버튼을 누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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